[연구소의 창] 전장연의 시민불복종 운동이 우리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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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전장연의 시민불복종 운동이 우리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

윤정향 295 02.26 09:00

[연구소의 창] 전장연의 시민불복종 운동이 우리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



작성: 윤정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학교에서 배운 후 좋아했다.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린 마음에 시 한 편쯤 암송하면 그럴듯해 보일 것 같았는데 「서시」는 짧고 건조해 제격이라 생각했다.

성인이 되고서도 한참 후 어느 날 문득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있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라는 구절에서 시인의 예민함, 괴로움, 순수함, 절절한 결의가 와닿았다. 시인은 대단히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사람이거나, 그런 인격을 지향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리라 짐작했다. 다른 한편으로 ‘뭐 그렇게까지 올곧아지려고 했을까, 누구도 비난하지 못할 세상을 살고 있었을 텐데···’라는 거리두기도 했다.


이타적인 것과 개인의 권리 존중


이타적인 것이 타인의 이익, 타인의 권리를 옹호한다는 뜻인데 나의 이익보다 우선한다는 것인지, 나의 이익만큼 지지한다는 것인지, 혹은 나의 이익에는 피해가 없는 수준에서 남을 배려하고 돕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사실 세 측면의 해석을 구별하지는 않았던 것 같고 그저 모두 포괄하겠거니, 좋은 게 좋은 거지 싶었다. 어쨌든 타인을 존중한다는 점에서 부끄럽지 않을 듯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출근길 지하철 행동’이 2021년 12월 3일 이후 3년째 시민불복종운동으로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가 삭감한 특별교통수단 271억 원 예산은 올해도 장애인이 편안하게 콜택시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서울시의 ‘권리 중심 공공일자리 폐지와 최중증 장애인 400명 해고’는 사회적 존재로서 중증장애인의 삶을 베어버린 셈이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의 절박함에 찬물을 끼얹었고 이타심의 불분명했던 경계를 톺아보게 했다. 경계는 사실 매우 선명했다. 나의 권리로 대변되는 일상의 유지가 침해받지 않기를 바라는 심리가 최후의 판단 기준이고 경계선이었던 거다.

장애인도 차별받지 않고 비장애인처럼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시민으로서 나는 생각한 적이 있는가? 비장애인 시민들은 얼마나 어느 수준까지 이타심을 발휘하는가? 정의로운 사회나 공정한 사회라고 하려면 적어도 제도화된 이타성이 사회규범으로 살아있는 사회여야 하지 않을까? 장애인의 노동권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나 돌아보면 윤동주 시인의 고뇌와 결기가 새삼 비수가 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만남을 제도화해야 한다


면접 참여자로 만났던 이들 중에 장애인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는 사업체의 인사담당자나 대표들이 있었다. 시장 논리에 충실하게 사적 이익을 위해 장애인을 채용했지만, 장기간 고용하면서 얻는 장점이 있었다. 너무도 평범하고 당연한 진리인 사람 관계의 변화다. 제품의 품질이 떨어질 줄 알았는데 품질 인증 마크를 받았다거나 불량이 오히려 줄었다는 사례, 누구나 장애를 겪을 수 있다는 현실 앞에서 겸손함과 동료로서 이해하기 위해 비장애인이 습득하는 언행들, 그리고 일터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인식의 변화가 그것이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이 조사·발표하는 ‘기업체장애인고용실태조사’에서도 장애인 직원을 고용하고 있는 업체가 미채용 업체보다 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불신이 낮게 나타났다.

우리의 일터에 장애인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작업장 시설이나 이동 편의시설이 법대로라도 갖춰져 있다면 사무실, 식당, 공장 어디에서도 장애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사회 어디에서나 일하고 있는 그들을 굳이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스칠 수 있을 것이다.

직접 접해야 인식이 바뀔 수 있는 부분도 있는 법이다. 개인의 경험으로부터 터득한 깨달음은 왜곡될 수 있기에 다수가 경험할 수 있도록 제도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타심과 개인의 권리가 경계에서 마주하게 될 때 권리의 차이는 권력의 차이로 등장할 수 있다. 그것을 당연하게 느끼고 받아들이는 순간, 누구도 예외가 없이 겪었거나 겪을 우리 사회의 약자에게 불이익하고 불편한 제도를 긍정할 위험이 도사리기에 우려스럽다.


다양성과 공정이 만드는 풍요로운 사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시민으로서의 노동 의무와 권리를 찾는 운동을 하고 있다. 이동할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사람들과 섞여서 부대끼고자 하는 것이다. 시민불복종 운동이 보내는 메시지는 우리 사회가 좀 덜 경쟁할 수 있으며 설령 경쟁하더라도 주위를 돌아볼 줄 알게 하는 사회로 가자는 것이다. 차별보다는 다양성과 공정이 앞서서 우리 사회가 풍요롭고 평등해질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좀 더 멋진 어른이 되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 이 글은 월간 『참여와혁신』 2024년 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http://www.laborpl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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