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문재인 정부가 맞닥뜨린 노동개혁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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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문재인 정부가 맞닥뜨린 노동개혁 과제

노광표 6,181 2017.05.17 07:25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였다. 첫 출발은 신선하고 흠잡을 것 없다. 불통의 상징이었던 청와대는 어느새 소통의 아이콘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이 손수 국무총리 후보자와 비서실장을 국민에게 소개했다. 박근혜정부가 밀어붙인 국정교과서를 폐지했으며, 비검찰 출신을 민정수석에 임명하여 검찰개혁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지난 12일에는 취임 뒤 첫 외부 일정으로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포하였다. 대통령 한 명 바뀐다고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속설이 얼마나 거짓인가를 잘 보여주는 일주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미래가 꽃길이 아님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은 갈수록 격화하고 있으며, 박근혜정부가 남긴 비정상의 유산은 사방에 널려 있다. 시나브로 악화하는 경제 상황은 문재인 정부의 아킬레스건이다. 1344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는 청년실업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저임금 노동자 비율, 갈수록 벌어지는 고용형태·기업규모별 임금 격차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회적 과제이다. 비정규직 양산, 노동시장 내 격차 확대는 노동 유연화의 결과물이며, 불공정 원하청 관계를 구조화한 재벌대기업들의 산물이다.
 
빈부격차 해소,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한국 사회의 발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크지만 개혁을 뒷받침할 정치 역량은 튼실하지 못하다. 집권여당의 의원 수는 과반수에 턱없이 부족하며, 국회선진화법의 문턱인 180석은 자유한국당을 뺀 모든 정당이 힘을 합할 때 가능하다. 안정적 국정을 위한 연정과 협치가 논의되지만 지방선거를 1년 앞둔 정치일정을 고려할 때 여야 협력은 정치인들의 말장난이다. 대통령 임기 시작 한 달이 지나면 허니문은 끝나고 여야 간 치열한 대립 및 갈등은 예정 수순이다. 야당이란 존재 자체가 정부와 여당에 대립각을 세우고 전선(戰線)을 형성해야만 생존할 수 있고 차기 권력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것은 권력구조이다. 청와대권력은 바뀌었지만 재벌권력, 언론권력, 검찰권력, 관료권력의 힘은 요지부동이다. 날카로운 이빨을 감추고 숨죽인 채 있지만, 작은 틈새만 보이면 반격에 나설 것이다. 좋든 싫든 문재인 정부가 직면한 정치 환경이다.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치밀한 개혁 추진전략과 과정 관리가 필요하다. 이벤트식 개혁 추진은 지지자들을 환호하게 하지만 정권의 울타리를 좁게 만든다.
 
국민이 새 정부에 진정 기대하고 원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내 삶이 나아지느냐다. 국민들의 삶을 보듬어 안으려면 노동개혁을 으뜸으로 추진해야 한다. 노동개혁은 국민들의 삶을 결정하는 일터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여소야대 상황이지만 노동공약은 자유한국당를 제외하면 유력 4당의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그 시작은 노동조합 보호 바깥에 있는 미조직 영세사업장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대책 강구이다.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하기 위한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칼퇴근법 도입 및 주당 노동시간 52시간 상한제 도입, 체불임금 해소를 위한 정부의 대위변제 전면 확대, 근로감독 강화를 통한 탈법적 노동관행 해소가 필요하다.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생명·위험·안전 업무의 비정규직 사용 금지도 시급하다.
 
노동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기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껍데기만 남은 노사정위원회를 해체하고 노사정이 합의할 수 있는 대화기구를 뿌리부터 재구성해야 한다. 대화는 상대에 대한 인정과 존중에서 시작된다. 국제사회의 웃음꺼리가 된 전국교직원노조와 공무원노조의 법외노조 방침은 하루 빨리 폐기되어야 한다. 노사정 간 논의 틀을 지역, 업종(산업) 구분 없이 만들어 노동 현안을 풀어야 한다. 더디지만 사회적 대화의 기본 원칙인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를 실현해야 한다. 서민과 노동대중을 동반자로 하지 못하는 개혁은 추진 단계부터 어깃장 날 수 밖에 없다. 노동은 시혜의 대상이 아닌 개혁의 동반자이며 주체이기 때문이다.
 
과거 노동개혁이 실패한 원인은 정부가 ‘기울어진 운동장’을 외면하고 기계적인 중립 입장에 서 심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사용자에 편향된 노동관계법을 맹신하며 ‘법과 원칙’을 앞세울 때 노동개혁은 좌초될 수밖에 없다. 새 정부는 기업 편향적인 정부의 노동행정 지침부터 폐기하여야 한다. 취업규칙 일방개악 지침, 공정인사(일반해고) 지침, 성과연봉제 지침, 단체협약시정명령지침은 법을 무력화한 과거 정부의 노동 적폐(積弊)이다. 문재인 정부는 눈치 보지 말고 촛불시민정신을 따라야 한다. 무소의 뿔처럼 가라. 그 뒤는 국민들이 있다.
 
 
* 이 칼럼은 5월 16일자 뉴스토마토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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