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직업의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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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직업의 사회적 가치를 생각하다

박용철 4,834 2021.03.06 10:10


작성자: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직무급 임금체계를 설계하기 위해 반드시 거치는 것이 직무평가이다. 직무평가는 직무급을 설계할 때만 거치는 과정이긴 하지만, 직무평가 결과는 우리가 영위하는 여러 직무(직업)의 상대적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 결과를 통해 우리사회 구성원의 직업(직무)에 대한 인식과 대우를 직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직무평가의 기준과 척도는 상당히 정교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지만, 필자가 직무급을 비롯해 임금체계 작업을 할 때마다 부딪히는 고민은 바로 직업(직무)의 사회적 가치이다. 그러한 고민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육체노동이나 기능직이 정신노동에 비해 너무 저평가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실제로 직무평가 항목들은 육체노동에 비해 정신노동에 보다 유리한 항목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울러 또 하나의 고민은 바로 작업의 위험성이다. 일부 논란은 있지만, 최소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보면, 육체노동이 정신노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험한 환경에 더욱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직무평가 항목에 상당히 단순화된 채 포괄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필자가 두 가지 고민을 하는 배경에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이중노동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가 차원에서 정신노동으로 대표되는 사무직이나 전문기술직과, 육체노동으로 대표되는 단순 기술직이나 노무직 간의 노동조건 격차는 물론이고, 기업 차원에서도 상하간 격차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민은 좁게는 임금체계를 설계할 때, ‘각 직무의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는 방법은 없을까?’, ‘위험한 작업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상황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나아가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 보편적인 임금제의 시행방안은 무엇일까?’,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결합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그리고 어렴풋하게나마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다.

 

첫째, 임금체계를 설계할 때 사회적 가치 혹은, 직무의 위상을 고려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기준으로 사회적 가치를 평가할 것인가? 단순하게 생각해서 해당 직무의 대체 가능성이나 미수행 시 파급력, 비상시 필요성, 해당 업무를 꺼리는 정도 등의 기준을 선정하여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게 되면, 단순 노동이라 하더라도 우리 생활과 밀착되어 있어 반드시 필요한 많은 직업(최근 논의가 부상되고 있는 필수노동 등)들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유해․위험업무 작업자의 경우, 아무리 단순노동이라 하더라도 충분한 가치를 인정하고 보호해야 할 것이다. 산업안전이나 산업재해 측면에서 볼 때, 유해․위험업무 작업자는 여전히 미흡한 점이 많은 우리나라 현실에서 상시적으로 크고작은 산업재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상황에서 노동자의 생명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판단된다. 물론 해당 업무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한 안전장비 구비나 안전설비 구축, 그리고 안전교육 강화 등 안전보건체제 등을 통해 위험성을 완화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위험을 내재하고 있는 업무의 경우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할 것이며, 그것이 산업안전 강화에도 일조할 것으로 판단된다. 독일 금속산업의 ERA 임금체계에서는 유해․위험업무 등 작업환경을 별도의 항목으로 구성하고 있다.


셋째, 임금체계를 설계할 때, 직무별ㆍ직군별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이 작업에서는 공신력 있는 국가기관에서 객관적 기준과 지표를 사용하여 마련하는 것이 필수적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각 직무별ㆍ직군별 격차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기업내외간의 직무별ㆍ직군별 임금 차이가 지나치게 크고, 이중노동시장 역시 뚜렷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를 최대한 축소해 나가야 할 것이다.


넷째,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결합(격차 해소)이다. 현재 여러 나라의 임금체계를 보면, 여전히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간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점차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차이를 축소하고, 양자 간의 구분을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2000년대 초반부터 독일의 금속산업과 전자산업의 임금체계에서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간의 차이를 폐지하고, 현재 대다수 지역에서 단일 임금테이블을 사용하고 있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간의 구분을 없애는 것은 마르크스가 「고타강령 비판」​1)에서 제시한 것처럼 상당히 요원해 보이는 일이고, 특히 우리나라의 사회문화적 분위기에서는 더욱 어려운 일이지만, 현재 앞서 나가는 국가의 흐름이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차이를 축소해 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볼 때, 그것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이상에서 제시한 사안들은 비록 단시간에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노동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고, 궁극적으로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며, 미래 사회를 대비해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판단된다. 그것을 통해 모든 노동이 소중하고 가치가 있음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며, 궁극적으로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로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코로나19와 4차 산업혁명 상황에서 급격하게 가시화된 플랫폼노동, 필수노동, 특수형태고용종사자 문제 등 다양한 노동의 형태를 볼 때, 우리에게 필수 불가결한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저임금과 산업재해 등으로 상당한 고통을 겪고 있다. 현재도 그렇고, 향후에도 이러한 노동의 형태는 더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에게 점점 더 많은 것을 의지해갈 것이라는 의미다. 그들의 노동이 단순노동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의 노동은 이 사회를 지탱해 나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소중한 노동이며, 사회적 가치 또한 높은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가까운 역사 – 아니, 현재 우리 사회를 보더라도, 잘 배우고 가진 것은 많지만, 이 사회에 민폐만 끼치며 살아가는 일부 지식인과 관료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데 지대한 기여를 하고 있는 대다수 노동자와 민초들이 있다. 요원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이들이 수행하는 일의 가치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를 꼭 실현해야 할 것이다.


* 1) “... 공산주의 사회의 더 높은 단계에서, 즉 개인이 분업에 복종하는 예속적 상태가 사라지고 이와 함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 사이의 대립도 사라진 후에, 노동이 생활을 위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일차적인 생활욕구로 된 후에, 개인들의 전면적 발전과 더불어 생산력도 성장하고, 조합적 부의 모든 분천이 흘러넘치고 난 후에 - 그때 비로소 부르주아적 권리의 편협한 한계가 완전히 극복되고, 사회는 자신의 깃발에 다음과 같이 쓸 수 있게 된다. 각자는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는 필요에 따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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