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강좌] ‘한국형 노동이사제’ 8년의 성과와 과제-김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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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강좌] ‘한국형 노동이사제’ 8년의 성과와 과제-김태영

() 699 10.14 15:07

한국형 노동이사제’ 8년의 성과와 과제 

 


김태영 서울시설공단 노동이사 



연구소는 2024년 사업으로 노동운동의 이론과 쟁점을 공부하는 ‘정책강좌’를 개설키로 결의하고, 그 일환으로 ‘노동이사제 정책강좌’를 6월 18일부터 7월 23일까지 진행했다. 서울시 공기업 노동이사들을 중심으로 8명이 참가하여 노동이사제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내용으로 진행되었다. <e노동사회>는 수강생들이 정책강좌에서 보고 느끼고 배운 바를 ‘졸업논문’ 형식으로 소개한다. - 편집자




1. 서론: 직장 민주주의와 공기업 투명성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시절 주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면 ‘대통령’이라고 대답했던 친구들이 있었다. 민주주의라는 사회 구조 속에서 우리는 초등학교 반장에서 대통령까지 많은 선거를 통하여 내가 살고 있는 사회라는 틀에 참여하면서 투명하고 함께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살아보니, 사회와 달리 기업은 민주주의라는 제도와는 거리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물론 직장 내에서도 직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과 노사협의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동안 이사회와 같은 기업 경영의 의결기구는 노동자인 직원 신분으로는 참여할 수 없는 직장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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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2016년 서울시 조례 제정으로 서울시 산하 공기업에 노동이사제라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서울시설공단에도 2017년부터 2명이 선출되어 노동자 신분의 노동이사가 이사회에 비상임이사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6년 6월 29일 「서울특별시 근로자이사제(노동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어 우리나라에도 경제 민주화의 첫걸음인 노동이사제가 도입되었다. 그 직전인 2014년과 2015년에 박근혜 정권은 공공기관 정상화라는 이름으로 복리후생 제도를 폐지하거나 저하시켰고, 정년연장 여부와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임금  피크제를 도입하도록 강제하였다. 


그리고 2016년 중앙정부는 산하 공공기관에 성과연봉제와 강제퇴출제를 획일적으로 추진하였다. 그 결과 노사 합의 없는 일방적인 이사회 강행, 가처분, 고소 및 고발, 노동조합 위원장 감금과 회유, 부당해고, 경영평가 감점 및 임금인상률 제외, 단체교섭 결렬 및 파업 등 많은 갈등과 충돌이 일어났다.


이러한 중앙정부의 방침과는 반대로,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는 공기업의 경영 패러다임을 대립과 갈등이 아닌 상생과 협력으로, 노동자와 경영자가 서로 소통을 통해 책임과 권한을 함께하는 공동운명체 경영구조로 전환하겠다는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 최초로 서울시 투자출연기관에 노동이사제가 도입되었다. 그리고 2017년과 2018년에 서울시 16개 기관에서 22명의 노동이사가 선출되어 서울시 차원이기는 하지만, 공기업 이사회에서 최초로 노동자에 의해 선출된 이사가 활동을 하게 되었다. 

  

이후 노동이사제는 확대되어 2024년 10월 현재, 경기도를 비롯한 10개 광역자치단체와 부천시를 비롯한 8개 기초자치단체가 조례를 제정하여 산하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했다. 그리고 2022년 1월 11일에는 국회에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어, 드디어 중앙정부(국가) 공공기관에도 노동이사제가 도입되었다.



2. 노동이사제 8년의 성과 


① 노동자 경영참가와 기업 투명성의 촉진

  

“노동자의 경영참가를 통하여 노동자와 사용자간 협력과 상생을 촉진하고 경영의 투명성과 공익성을 확보하며, 대시민 서비스를 증진시키는데 기여함”을 목적으로 2016년 도입된 서울시 노동이사제는 지금까지 8년의 경험을 축적했다.  


그 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노동이사제는 노동자의 경영참가를 촉진하고 공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공익성을 높였다. 노동자에 의해 선출된 노동이사의 참여로 이사회의 의사결정에서 내부 직원들의 다양한 의사가 조금씩 반영되어 왔다. 노동자를 배제한 일방적인 의사결정 구조 안에서 노동이사는 노동자 출신의 메기 역할을 함으로써 이사회 운영에서 강력한 자극제가 되고 있다. 그 결과 공기업 운영에서 투명성과 공익성이 개선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설공단은 노동이사제가 도입된 이후 지난 8년간 세 차례에 걸쳐 임원 문책(해임)안이 이사회 공식 안건으로 상정되었으며, 이 중 2건은 의결되었다. 노동이사의 이사회 참여로 인한 ‘메기 효과’ 덕분에 이사회 구성원의 도덕성이 높아지고 안건 상정에서 투명성이 개선되었다.   


 이사회 운영의 정상화와 노동이사 협의체의 결성


노동이사제 도입 이후 공공기관의 이사회 안건에서 노동이사가 단지 내부 직원인 노동자만을 대변하는 것을 넘어 공공기관의 목적과 취지에 맞는 공공성의 향상을 위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시 기후동행카드 도입이 좋은 사례다. 공공기관 이사회에서 비상임이사의 역할은 형식적인 경우가 많지만, 비상임이사의 지위를 갖는 노동이사로 활동하면서 이사회 관련 내부 정보의 내실 있는 공유 등 점진적으로 개선 방안을 마련해가고 있다. 


노동이사 협의체를 통해 노동이사들이 활동을 공유 및 연대의 기초를 마련한 것도 8년의 성과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단위에서 노동이사 협의체를 구성했고, 이를 통해 각 공공기관의 이사회 운영에 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매년 정기적으로 각종 교육, 세미나, 포럼, 학술 토론회 등을 진행하면서 노동이사제의 개선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3. 현 시기 노동이사제를 둘러싼 도전 


① 직원과 노동조합의 무관심


위에서 설명한 8년 동안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노동이사제는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 현 시점에 가장 중요한 도전은 노동이사에 대한 내부 직원들과 노동조합의 무관심이다. 이는 노동이사제가 도입될 때부터 우려되었던 사안이다. 


제도상 노동이사는 노동조합을 탈퇴하게 되어 있다. 노동조합과의 조직적 연계가 차단된 것이다. 그리고 노동이사의 권한은 비상임이사의 그것으로 제한된다. 상임이사의 권한보다 훨씬 미약한 것이다. 하지만, 직원들은 기존 노동조합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 수준의 책임과 권한을 기대한다. 이것은 모든 직원의 투표로 선출되기 때문인 듯싶다. 


그리고 기존 노동조합과 노사협의회와의 관계 설정에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노동조합 및 노사협의회와 유기적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못한 채 노동이사제가 도입됨으로써 노동이사의 역할과 기능에서 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②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노동이사제의 분리와 법제도의 미비


다음으로 노동이사제의 이원화 및 법제화 미비라는 문제가 있다. 2024년 10월 현재, 우리나라 공공기관 중 중앙정부 산하의 공공기관은 2022년 1월 개정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공운법’)」 제25조(공기업 임원의 임면) 및 제26조(준정부기관 임원의 임면)에 의해 과반수 노동조합의 추천을 받은 비상임이사(노동이사) 1명을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에, 지방정부 산하의 공공기관과 관련해서는 국회에서 제정된 법률은 없으며,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를 통하여 직원 투표를 통해 기관당 1명 내지 2명의 노동이사를 선출하여 운영하고 있다. 


중앙정부 산하의 국가공공기관은 개정된 공운법에 근거하여 노동이사를 운영하고 있지만,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명확한 권한과 책임에 대한 내용이 없어 구체적인 운영에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지방정부는 「지방공기업법」에서의 법률상 근거 없이 자체 조례로 노동이사제를 운영하다 보니,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기관장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중앙정부 산하 국가공공기관과 지방정부 산하 지방공공기관의 노동이사 선출방식이 서로 달라 노동이사의 운영 여건도 격차가 생기고 있다. 노동이사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제도운영의 방식에 차이가 나면서 역할과 기능을 둘러싸고 노동이사들 사이에 이견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노동이사들의 협의체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중앙정부 협의체와 지자체 협의체로 분리되었던 이유가 되었다. 


③ 제한된 권한과 부족한 자원 

노동이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먼저 직면하게 되는 문제는 비상임이사인 노동이사의 권한이 상임이사에 비해 제한된다는 점이다. 원칙적으로 상임이사와 비상임이사의 권한에 차이가 없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노동이사 활동을 위한 자원, 즉 예산과 시간에 대한 제도적 근거가 없다보니, 결과적으로 노동이사의 활동이 여러모로 제약받고 있다. 노동이사는 직원의 과업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노동이사의 직무를 겸직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이사 활동을 위한 시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있으며, 노동이사 활동을 위한 예산 규정도 명확하지 않아서 직원들과의 간담회조차 갖기 어렵다. 노동이사의 효과적 활동을 위한 자원인 시간과 예산은 기관이나 지자체에 따라 다르다.


기관장의 의지도 문제다. 이사회 구성원인 임원 선출 시 해당 공기업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부족한 인사가 낙하산으로 뽑히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이사회 운영의 전문성이 저하된다. 또한, 노동이사를 제외한 일반 비상임이사는 이사회 안건을 검토할 시간이 부족하고, 기관의 내부 정보에 대한 접근도 제한된다. 



4. 결론: ‘한국형 노동이사제’가 나아갈 방향


① 법제도의 정비


노동이사제가 나아갈 방향과 관련해서는, 특히 지방정부 산하 공기업 노동이사제의 안정과 정착을 위한 법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지방공공기관 노동이사도 국가공공기관 노동이사에 준하는 통일된 법제화가 필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노동이사제와 관련하여 통일된 법령이 필요할 것이고, 그 디딤돌로서 단기적으로 지방공기업 노동이사제의 법제화가 중요한 과제다. 


② 노동이사의 권한 강화와 편의 제공


노동자 신분의 비상임이사인 노동이사의 권한을 상임이사와 비슷하게 강화해야 한다. 이는 이사회 운영의 내실화에 기여할 것이다. 이러할 때 국민과 임직원에게 노동이사의 존재감을 과시할 수 있는 뚜렷한 성과를 만들 수 있고, 노동이사제 도입의 취지와 목적을 실현할 수 있다. 또한 노동이사의 원활한 활동을 위해 시간과 예산 등의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적절한 자원의 제공은 노동이사가 제대로 된 활동을 펼쳐나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③ 노동조합과 노사협의회와의 유기적 관계 정립 


마지막으로 노동조합과 노사협의회 같은 기존의 노동 제도와 노동이사제가 유기적인 협력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노동자 경영참가라는 노동이사제의 원래 목적에 맞게 노동이사가 조합원 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산별노조-직장평의회/단위노조-노동이사’가 체계적으로 묶여 서로 협력하는 독일과 스웨덴의 선진적 제도를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우리나라에 이식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여건에 맞게  “노동조합-노사협의회-노동이사제”의 유기적 관계를 발전시킴으로써 노동이사제의 원래 취지인 경제 민주화와 공기업 투명성 제고에 이바지해야 한다. 이럴 때 노동이사제는 국민과 임직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지속가능한 제도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e노동사회> 202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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