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언] 1만원 시대, 최저임금 어디로 가야 하나 - 이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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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1만원 시대, 최저임금 어디로 가야 하나 - 이남신

() 654 08.08 17:55

1만원 시대, 최저임금 어디로 가야 하나

- 인상 중심에서 선순환 구조에 집중해야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공동대표

 

8월 5일 고용노동부 고시로 2025년 최저임금이 전년 대비 1.7% 오른 시간급 1만 30원으로 확정됐다.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이 본격화된 2014년으로부터 10여년이 지나 1만원을 간신히 넘어선 것이다. 필자는 2015년 4월부터 2020년 5월까지 5년간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으로 활동했다. 


한때 ‘국민임금’으로 불리며 떠들썩했던 최저임금이 지난한 노사정 공방 속에서 의미가 퇴색해버린 지금 여러 감회에 젖어든다. 그리고 되묻게 된다.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은 어떤 성과와 한계를 남겼는가, 지금 최저임금은 어떤 사회적 의미가 있는가. 다가오는 1만원 시대는 또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현행 최저임금제도는 어떤 방향으로 개선해야 하는가. 


최저임금제도에 대한 여러 부정적인 진단과 평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최저임금은 대다수 저임금 노동자들의 생계비를 결정하는 잣대이다. 특히 노동조합 바깥에서 임금 협상력을 상실한 미조직 노동자들의 기준임금이며, 영세자영업자에겐 지불능력의 임계점을 결정하는 마지노선이기도 하다. 적용대상으로 본다면 최저임금보다 더 중요한 노동 의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최저임금 제도가 시행된 지도 37년이 된 만큼, 민감한 계급적 의제이면서 사회적 교섭 주제인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의를 합리적 공론의 장으로 끌어와야 할 때다. 이 글은 최저임금 1만원 운동 평가를 바탕으로 최저임금 1만원 시대 최저임금 제도의 개선방향과 몇 가지 주요 대안에 대해 거칠게나마 제시하려고 한다.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의 등장


최저임금 1만원은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에서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한 청소노동자 울산과학대 김순자 지부장 선거운동본부 공약으로 최초로 제시됐다. 2013년 창립된 알바연대에서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을 시작했을 때 대다수 주변 반응은 잘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었다. 통상적으로 임금 요구는 노동자들의 총의를 일일이 모아 토론과 합의를 거쳐 결정해왔으므로 알바연대의 최저임금 1만원 운동 제안은 노동조합 간부와 활동가들에게 다소 생경했고 흔쾌하게 동의하기 어려웠다. 


2014년 민주노총의 첫 직선제 위원장으로 당선된 한상균 집행부가 최저임금 1만원을 공식 요구로 내걸면서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이 본격화됐다. 그리고 2016년 최저임금위원회에서부터 양대 노총 추천 노동자위원들은 최저임금 1만원을 공식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7년 촛불항쟁 직후 최저임금 1만원-비정규직 철폐 공동행동(약칭 ‘만원행동’)이 만들어지면서 전국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주목할 만한 사실은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심상정을 비롯해 19대 대통령선거 당시 여야 주요 대선 주자 모두가 최저임금 시급 1만원 달성을 공약에 반영한 것이다. 비록 달성 시기는 3년에서 5년으로 차이가 있었지만 혁명적인 변화였다. 한국현대사에서 노동 관련 공약이 당선 가능한 유력 대선 후보 공동공약이 된 경우는 유일무이한 일이었다. 


먹고 살려면 한 달 200여만 원은 있어야 한다는 청년노동자들의 소박한 정치적 요구로 내세워진 최저임금 1만원 주장이 노동조합 전국연합체인 민주노총의 공식 요구로 받아들여진 후 시민사회의 지지를 획득하고, 촛불항쟁을 분기점으로 대통령선거에서 핵심이슈가 되는 역동적인 과정은 그 자체로 기이한 일이었다. 아마 가장 성공적인 노동 공약의 정치이슈화 사례라 할 만 하다.


  계륵으로 전락한 최저임금 1만원


촛불항쟁에 힘입어 집권한 문재인 정부가 표방한 소득주도 성장의 마중물로도 주목받았던 최저임금 인상은 2017년 16.4%, 2018년 10.9%로 연속 두 자리 수 인상률로 오른 후, 저임금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영세자영업자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주범으로 공격받게 된다. 


긍정 효과보다 부정 효과 여론이 압도하면서 고용악화와 경기둔화의 원인으로 낙인찍혀버린 것이다. 특히 최저임금 산입범위 관련한 입법 개악과 주휴수당 논란 속에서 합리적 대안 마련에 실패하며 노정 갈등이 격화됐고, 소상공인 단체의 최저임금 불복종운동으로 번지면서 을(乙)들의 대립이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저임금 노동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불평등 양극화 구조를 개혁할 교두보로 여겨졌던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반감되거나 상쇄된 채 최저임금이 소모적 논란의 진원지로 돌변해버렸다. 


결국 2019년 2.9% 인상으로 급락한 후 최저임금 인상률은 회복되지 못했다.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 임기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은 7.2%로 아이러니하게도 탄핵당한 박근혜 정부(7.4%)보다도 낮았다. 지난 5년간(2020~2024년) 평균 인상률은 더욱 낮아져 3.38%에 불과했다.


  최저임금제도의 운동적 의미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의 등락은 불평등 양극화 한국사회의 민낯을 드러내고 노동조합운동 진영의 딜레마를 동시에 보여준 드라마틱한 과정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임금은 ‘최저임금’이란 아재개그가 실없는 소리로 그치지 않고 현실이 됐다. 대다수 저임금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생계비를 보전하고 임금 불평등을 개선하는 사회적 의제로서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은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보수 정당과 정치인들마저 합류할 정도였다. 그런데 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버린 것일까.


정권과 자본이 임금 불평등을 개선하는데 앞장설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지난 민주노조운동 수십 년 역사에서도 켜켜이 방증됐다. 노동과 자본 간의 계급적 역관계가 한참 기울어진 운동장인 한국에선 더욱 그렇다. 헌법기본권인 노조 조직률 제고와 노동조합의 정치사회적 영향력 증대는 한국사회를 평등사회로 견인하는 핵심 변수임이 분명하고 여전히 주력해야 할 과제다. 문제는 노조 바깥 어려운 처지 노동자들이 대다수라는 현실이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노조 조직률이 현재의 소폭 상승 추세대로라면 비정규직과 작은 사업장을 비롯한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은 노동조합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다. 임금 협상은 엄두도 낼 수 없으니 주면 주는 대로 받을 수밖에 없고, 노동인권 사각지대에 계속 방치될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최저임금제도의 의미가 주목받는 것이다. 


최저임금제도는 전국에 걸쳐 1인 이상 사업장 모두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단일임금제도로 임금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소득 인상과 함께 연대임금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당장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한 생활임금이 진작 1만원을 훌쩍 넘어선 것만 봐도 최저임금제도 효과는 폭넓다. 한계가 분명하더라도 최저임금제도는 여전히 중요한 것이다.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의 성과와 한계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일까. 단순하게 평가한다면 최저임금 의제가 인상률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불평등 재생산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 한 긍정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최저임금이 인상되더라도 선순환 구조를 담보할 수 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라는 것이다. 재벌 중심 사회경제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최저임금을 둘러싼 공방은 대증요법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결국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간 대립 속에 최저임금이 핍박받으면서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은 결정적인 벽에 부닥쳤고 주저앉았다. 


대표권한과 교섭권을 지닌, 힘 있는 노사정 모두 그 갈등에 휘말려 대리전 양상만 지속됐다. 이런 조건에서는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당사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양대 노총을 비롯한 노조운동 진영이 최저임금제도 개선을 실현하는 핵심주체로 역할할 수밖에 없다. 어렵지만 노조운동의 사회적 지지와 위상을 끌어올리는데도 최저임금은 중요한 지렛대이기에 집중해야 마땅하다. 


  1만원 시대, 최저임금제도 개선 과제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을 거쳐 지난한 과정 속에서 마침내 맞이한 최저임금 1만원 시대, 노동운동이 앞장서서 최저임금제도를 어떻게 개선해가야 할까.


 ① 양대 노총 위원장 참여해야 


최저임금위원회는 임금교섭기구다. 노사정간 삼각 역관계가 영향을 미친다. 노측은 사측에 기운 정부도 상대해야 하므로 힘겨운 구조다. 양대 노총의 사회적 위상이 좀 더 확고해져야 하는 이유다. 우선 최저임금위원회에 양대 노총 위원장이 대표위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숙고하고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일반 사업장과 산별 단위 교섭에서도 주요한 임금 요구는 위원장이 책임지는 게 상례다. 두 노총 위원장이 대표위원으로 들어간다면 사회적 주목도와 함께 교섭력도 높아질 것이다, 양대 노총의 조직적 책임도 커지는 만큼 연초부터 최저임금 및 제도개선 요구를 노총 내 민주적 토론과 숙의를 거쳐 확정한다면 아래로부터의 힘도 배가할 수 있다.


나아가 노조 바깥 노동자들과 만나는 접점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기획사업을 진행하면서 노조조직화 확대와 병행해 최저임금 인상 및 제도개선 동력을 확대해가야 한다. 지금은 최저임금이 상층 중심 논의 구조에 머물러있는 한계가 분명하기 때문에 변화가 필요하다. 최저임금제도는 양대 노총의 가장 중요하고 유력한 전략적 연대사업이기도 하므로 대표자가 앞장서야 한다.


 ② 공익위원 선정 방식 개선해야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위원을 누구로 선정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다. 노동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동수를 구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위원회 의결 사항의 실질적 결정 권한을 공익위원이 행사하게 된다. 실제로도 공익위원의 성향에 따라 최저임금 수준이 결정돼왔다. 공익위원은 현행법상 고용노동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위촉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사에 관한 중요한 사항이 실질적으로는 행정부가 선정한 위원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라 볼 수 있다. 그 결과 최저임금위원회의 독립성과 공익성이 의심받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공익위원 선정과 관련해서 중립성 강화 방안으로, ①공익위원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방식을 개선하여 국회(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의결하는 방안 ②공익위원을 국회, 대통령,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선출 또는 지명하는 방안(현행 국가인권위원회 방식) ③노사대표자는 공익위원 후보자 명단을 제출하고, 노사 양측이 상호 후보자에 대해 배제하고 남는 위원을 공익위원으로 선임되는 방안(현행 노동위원회 방식) 등이 제시된 바 있다. 각각의 방안이 일장일단이 있어 단일한 대안으로 추진하긴 어렵더라도 현행 공익위원 선정방식의 개선은 필요하다.


 ③ 투명한 정보 공개


최저임금위원회 운영규칙 제25조에는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의 동의 없이 회의 결과를 발표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운영규칙과 함께 30여년 넘게 구체적인 회의 결과를 공개하지 않은 채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해 온 관행이 맞물리면서, 최저임금위원회가 ‘밀실합의’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최저임금은 전 국민의 임금 하한선으로서 사회적, 경제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제도이다. 그런데 최저임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누구에 의해 결정되고 있는지 공개되어 있지 않은 것은 문제다.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최저임금위원회가 국민들과 최저임금 적용 당사자 앞에 당당하지 못하다는 것은 그만큼 위원회가 무책임하다는 방증이 되기도 한다. 최저임금위원회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 각종 회의의 회의록을 보면, 회의 결과 중심으로만 회의록이 정리되어 있다. 때문에 누가 어떤 발언을 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최저임금 심의와 결정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의 중요성과 걸맞게,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위원회 회의 속기록 공개 및 방청을 허용하는 등의 정보 공개의 개선이 필요하다. 


국회는 상임위원회 회의와 본회의의 일정, 출석 현황, 심사안건명, 안건 내용 등이 속기사에 의해 속기방법으로 기록된다. 또 국회방송으로 중계되며 신청을 하여 방청할 수도 있다. 속기록과 영상회의록은 모두 국회 홈페이지에서 열람할 수 있다. 이러한 국회의 회의 공개 방식을 벤치마킹하여 비공개가 불가피한 마지막 인상률 결정 회의를 제외한 대다수 최저임금위원회 회의는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마땅하다.


 ④ TV공개토론과 최저임금 박람회 개최


최저임금 적용 당사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사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전원회의 기간 중 위원을 중심으로 한 TV공개토론 등을 개최하여 당사자가 직접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주최하는 최저임금 박람회를 개최해 제도 홍보와 의견 수렴 등을 통해 최저임금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고 관심을 촉구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도 있다. 


다양한 경로와 방식으로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상호 논의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지금보다 폭넓게 마련하는 것은 최저임금위원회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데도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⑤ 최저임금 사각지대 해소 방안 마련


최저임금 인상 폭만큼 사각지대가 넓어져 위반율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인상 효과도 반감될 뿐더러 위반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갈등이 늘어나는 문제가 생긴다. 철저한 행정감독이 필수다. 근로감독관 증원을 통한 최저임금 전담 TF팀 구성과 고용노동부와 지방자치단체 간의 협약 체결을 통한 공동대응도 필요하다, 위반 적발 시 엄정한 처벌도 따라야 한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되고 있는 잘못된 현실 속에서 최저임금 준수는 사용자가 지켜야 할 마지노선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최저임금은 사회임금으로 준수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과 공감이 중요하고, 특히 사용주들에 대한 계도와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사용자단체들의 자정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더욱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오히려 최저임금 적용 당사자들이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근본적인 개선 과제


 ① 최저임금 인상효과를 높이기 위한 임금체계 개선


기존의 통상임금과 최저임금 산입범위 및 주휴수당 논란 모두 기형적인 임금체계가 근본적인 문제를 낳은 원인이다. 뿌리를 건드리지 않고 매번 지엽적인 문제만 논란이 돼 문제해결에서 더 멀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묘하고 무책임한 노사 담합의 적대적 공조가 기형적인 임금체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 


기본급 중심의 임금체계로 개선되지 못한 채 현재의 복잡다단한 임금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최저임금을 올려도 인상 효과를 측정하기도 힘들고 위반 여부를 감독하기도 어렵다. 이전에 비정규-청년-여성-중견기업-중소기업-소상공인 계층별대표들이 본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던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우선 매듭지어야 할 핵심 의제 중 하나였지만 경사노위 파행으로 무산된 바 있다. 민감한 사안이지만 헝클어진 임금체계의 합리적 개선이 병행돼야 최저임금제도의 정상적인 운용이 수월해질 수 있다.


 ② 노조 조직률 제고 및 이해대변기구 확대


최저임금 인상분을 여러 가지 편법을 동원해 상쇄하면서 실질임금을 기존 임금 총액 수준으로 유지하는 사용주들의 위반 사례가 허다하다. 최저임금 적용 회피를 위한 각종 편법과 불법을 예방하고 해소하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최선의 대안은 노조 조직률 제고와 지방정부 예산지원 노동센터 같은, 어려운 처지의 노동자를 지원하는 이해대변기구의 확대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조 조직률이 지나치게 낮은 조건에서 한시적인 사회적 임금교섭 기구로 역할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므로 일터에서 여건에 맞는 임금 교섭을 통한 적정임금 결정이 될 수 있도록 노조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리고 현재의 낮은 노조 조직률을 보완할 이해대변기구가 빠르게 확충돼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은 노조조직률 제고 및 이해대변기구 확충과 함께 가지 않으면, 그 효과가 담보되기 어렵다.


 ③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최저임금 인상은 단순히 임금만 올리는 문제가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영세자영업자와 중소기업 문제도 염두에 둬야 한다. 따라서 한국사회의 잘못된 사회경제구조를 개혁하는 과제와도 직결된다. 재벌 독점 초과이윤 착취/수탈구조를 개혁해야 한다. 그리고 원하청 불공정거래와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탈, 프랜차이즈 본사가 강제하는 부당한 납품단가 인상과 고율 수수료 등 경제민주화 요구를 해결해야 한다.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 실현 없이는 최저임금 인상의 선순환 구조는 불가능하고, 을들의 연대도 어렵다.


  재벌 중심 양극화 구조에 대항하는 을들의 연대가 필요 


최저임금제도 운용에서 비정규직/청년/여성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간 을들의 연대가 최우선 과제로 대두됐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와 최저임금을 주는 대표적 사용자인 영세자영업자는 비슷한 처지의 사회적 약자다. 재벌 중심 양극화 경제구조에서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자영업자가 아니라 바로 과실을 독식해온 재벌대기업 집단이다. 공동 피해자인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는 대립해야 할 적대적 상대방이 아니라 손맞잡아야할 연대 대상이다.


좋은 일자리가 많아지면 무리한 창업을 하지 않아 과밀경쟁으로 폐업하기 일쑤인 자영업자들의 생존권 문제도 개선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늘어난 소득의 1차 수혜자도 자영업자가 되니 양수겸장이다. 다만 단기적으로 한계 자영업자의 경우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 자영업자를 포괄하는 사회안전망도 확대 강화돼야 한다. 그리고 노동3권 보장에 준해 대기업집단에 대한 상인들의 단결권과 단체교섭권도 보장될 수 있도록 함께 연대해 힘 모아야 한다.


수많은 저임금 노동자와 수백만 영세 자영업자의 생존권 문제보다 더 중요한 사회 의제는 드물다. 영세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이 최저임금 인상을 버거워 하는 진짜 이유는 원하청 불공정거래와 높은 상가임대료 및 카드수수료, 가맹점 본사의 과도한 로열티 및 비용전가,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 때문이다. 비정규직과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영세자영업자가 함께 손 맞잡고 ‘을들의 연대’가 진전할 때 비로소 경제 선순환 효과를 실현하는 적정한 최저임금 인상이 가능해진다. 


  노동정치 활성화 절실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가 실패했듯이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한국사회 불평등 개선은 쉽지 않은 난제다. 제대로 실현되려면 최저임금 적정 인상과 경제민주화와 노동권 신장 및 노동복지 확대를 비롯한 사회경제구조의 혁신을 추진할 진일보한 정치세력 역할이 필수적이다. 


현행 최저임금위원회와 위원회 구조를 둘러싼 제반 제도개선 과제가 어떤 공약을 앞세운 정권인가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노동계와 국민의 폭넓은 합의와 지지 기반 위에서 최저임금 관련 노동공약을 관철시킬 진정성 있고 강력한 정치세력이 지속적으로 예비돼야 한다. 노동정치 활성화는 최저임금 적정 인상과 경제 선순환 구조 마련을 위한 선행 필요조건이다.


적정한 최저임금 인상은 정글 자본주의인 한국사회가 사람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가는 교량이자 대다수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소득 제고 견인차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임금 차별이 심각한 한국사회 비정규직 문제를 점진적으로 해결하고 노조 조직률을 끌어올리는 지렛대가 될 수도 있다. 


  근본적인 사회경제구조 변화 전략 수립이 필요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은 한국사회 불평등 양극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을 선명하게 부각시키면서 정치 이슈화 했고 실제 초기 최저임금 인상도 달성했지만, 재벌 중심 불평등경제구조와 을들 간의 대립이란 암초에 걸려 좌초하고 말았다.


이제는 적정한 최저임금 인상을 수반하는 근본적인 사회경제구조 변화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려운 난제지만 경제 위기 시대 가장 고통 받는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자영업자가 상생할 방도를 최저임금제도를 통해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최저임금위원회와 위원회 운용을 둘러싼 논의가 합리적 공론의 장에서 펼쳐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사정 모두 각성해 불평등 문제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적 임금교섭기구인 최저임금제도를 공공재로 여기고, 지금까지 매년 되풀이돼온 관성에서 벗어나 책임 있는 논의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고통 받고 차별받고 있는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과 영세자영업자들이 지켜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출처: <e노동사회> 202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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