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노동법원 설립 논의를 바라보며 - 유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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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노동법원 설립 논의를 바라보며 - 유성규

윤효원 851 07.08 18:00

노동법원 설립 논의를 바라보며

  

 

유성규(성공회대학교 겸임교수, 공인노무사)

 

   

최근 대통령이 노동법원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노동계와 야당도 이에 찬성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필자는 노동자 권리 보호를 위한 법제도는 다다익선(多多益善)’ 즉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입장이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눈앞에 노동법을 두고도 산재은폐, 임금체불, 직장갑질 등에 시달리는 대한민국에서 노동법원이라는 새로운 기관의 신설 자체는 찬성할 만한 일이다.

  

'노동' 이름만 붙은 법원이어선 안 된다

  

그러나 노동법원 설립이 곧 노동자 권리 보호에 도움이 된다는 단순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노동이라는 이름이 붙은 법원이 만들어진다고 하여 그 기관이 노동자를 위해 기능하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노동법원이 잘못된 방향으로 설립되고 운영되면 자칫 노동자 권리를 현재보다 후퇴시키는 참담한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한 과거의 사례는 무수히 많다. 그 중에서, 과거 이명박 정부 시기에 이뤄진 복수노조를 허용한 법 개정을 돌이켜 살펴보자. 복수노조 허용은 노동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복수노조가 허용되기 전에는 11노조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노동자들이 헌법상 노동 3권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심지어 사용자가 어용노조를 먼저 설립하는 비상식적인 일까지 벌어졌다. 노동계는 오랜 기간 복수노조 허용을 위해 싸웠고 보수정부인 이명박 정부에서 법 개정이 이뤄졌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한가? ‘11노조교섭대표노조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작동되고 있고, 과거 복수노조 금지 시기의 병폐들은 대부분 현재에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소수노조에 대한 권리 침해, 노조 간 분쟁 등이 늘어나면서 오히려 이로 인해 노동 3권이 후퇴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같은 시기에 이뤄진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허용을 위한 법 개정의 결과는 어떠한가? 이 역시 노동계의 오랜 숙원이었다. 그러나 법 개정의 결과로 만들어진 근로시간면제제도는 노조 간부들의 활동을 제약하고 침해하는 여러 병폐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직 정부에서 노동법원과 관련한 구체적인 입장이 나온 상황이 아니다. 따라서 현재 시점에서 구체적인 평가나 전망은 이른 것 같다. 이에, 본고에서는 노동법원이 노동자 권리 보호를 위한 기관으로 만들어지기 위해 그 설립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반드시 고민하고 검토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지점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노동위원회의 기능을 보완하는 노동법원이어야

 

첫째, 신설되는 노동법원이 기존 노동위원회의 기능을 대체해서는 안 된다. 노동위원회 구제 절차는 법원 소송 절차에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간이성, 높은 접근성, 신속성 등 여러 장점들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노동위원회에 방문, 팩스, 우편, 인터넷 등으로 자유롭게 구제 신청을 할 수 있고, 노동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다.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노동자도 노동위원회의 도움을 받으면 사건을 진행할 수 있다. 구제 절차는 송달료나 인지대조차 없이 완전히 무료로 진행되고, 노동자는 기각 내지 각하되더라도 사용자에게 비용 책임을 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노동위원회에서는 매우 빠르게 구제 절차가 진행된다. 2022년 초심 지방노동위원회의 평균처리기간은 48.7, 재심 중앙노동위원회의 평균처리기간은 84.1일에 불과했다. 이 같은 노동위원회 구제 절차의 장점들은 수많은 노동자들이 더 완성도 높은 판결을 구할 수 있는 법원을 놔두고 노동위원회에 도움을 구하고 있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노동법원 설립 시 노동위원회 심판 기능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노동위원회 심판 기능 존립 시 사실상 5심제가 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2022년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단계에서 95.7%의 분쟁이 종결되었다는 객관적 사실을 간과한 주장으로서, 타당성이 없다고 본다.


노사 대표가 명예판사로 참여해야


둘째, 노동법원의 재판 및 판결에 노사를 대표하는 명예 판사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노동법원이 노동자 권리 보호를 위한 기관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법리만이 아니라 노동 현장에 대한 이해에 기반해서 재판과 판결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노사를 대표하는 명예 판사를 재판 및 판결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이는 판결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노사의 판결에 대한 수용도를 높일 수 있다.


실례로, 독일 노동법원의 경우 13심에서 모두 노사를 대표하는 명예 판사들이 재판 및 판결에 참여한다. 영국 고용심판원와 고용항소심판원의 경우에도 노사를 대표하는 명예 판사들이 재판 및 판결에 참여한다. 프랑스에서는 하급심인 노동법원의 재판부에 전문 판사는 참여하지 않고 노사를 대표하는 명예 판사들만 참여한다.


노동전문 판사가 전담해야


셋째, 노동 사건만을 전담하는 노동 전문 판사를 노동법원 내에서만 배치전환, 승진 시켜야 한다. 노동법원 설립 과정에서 우려되는 지점들 중 하나는 민사법원, 행정법원, 가정법원 등 다른 법원과 노동법원이 자유롭게 판사의 인사교류를 하는 것이다. 즉 노동법원 신설이 단순히 일반적인 법원조직의 확대, 일반적인 판사 수의 확대로 이어질까봐 우려된다.


신설되는 노동법원이 노동자를 위한 권리 보호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서는 노동 사건만을 전담하는 노동 전문 판사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아무리 노동법원의 조직, 절차 등이 잘 갖추어져 있더라도 노동법, 노동문제 등에 대한 전문성을 지닌 노동 전문 판사가 없다면, 노동법원 설립은 무의미해진다. 따라서 신설되는 노동법원의 판사들은 입직 후 노동법원에 처음부터 배치되어 노동법원 내에서만 승진, 인사발령 등이 이뤄져야만 한다.


신속한 재판 및 판결이 이뤄져야

 

넷째, 노동법원에서 신속한 재판 및 판결이 이뤄지도록 법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2022년 통계에 따르면,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사건에 대한 행정소송의 평균처리기간은 1심까지 401, 1심부터 2심까지 767, 1심부터 3심까지 1,038일이었다. 행정소송 1심이 끝나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린 것이다.


만약 노동법원에서 재판 및 판결을 하는데 이 같이 오랜 기간이 소요된다면, 이는 노동법원의 나머지 장점들을 모두 덮을 만큼의 치명적 단점이 될 것이다. 사실, 노동자들이 더 완성도 높은 판결을 받을 수 있는 법원을 놔두고 노동위원회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신속한 판정 때문이라고 본다.


낮은 임금, 나쁜 복리후생제도 등의 특성을 지닌 이른바 2차 노동시장 내의 노동자가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노동법원에서 1심에서만 1년이 넘도록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면, 아마도 그 노동자가 노동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소송이라는 절차의 특성상 노동법원에서 재판 및 판결에 소요되는 기간을 줄이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노동법원 설립 과정에서 신속한 재판 및 판결을 위한 법제도적 장치의 구축은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여야 할 사안이다.


노동자가 쉽고 값싸게 접근할 수 있어야


다섯째, 노동자의 노동법원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강구되어야 한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교통사고, 재산관계 등에서 법적으로 억울한 일을 당했지만 소송을 통한 문제제기를 포기하는 이들을 종종 목격한다. 이는 소송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도 하지만, 변호사 없이 혼자서 복잡한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송달료 및 인지대가 들고 소송 패소 시 부담해야 할 소송비용도 두렵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다양한 소송구조제도가 마련되어 있으나 그 제도적 장벽이 여전히 높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신설되는 노동법원은 노동자 혼자서도 소송을 제기하고 진행할 수 있도록 재판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야 한다. 또한 송달료, 인지대, 소송 패소 시 소송비용을 없애거나 대폭 낮추어 이에 대한 부담으로 소송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노동자도 소송을 진행할 수 있는 수준의 소송지원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필자는 노동법원 설립에 찬성한다. 다만, 앞서 살펴본 조건들이 모두 충족되는 경우에 한하여 찬성한다. 즉 조건부 찬성의 입장이다. 우리 사회가 노동법원을 바라보는 입장도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원과 판사가 아니라, 노동자를 위한 노동법원이어야


노동법원이라는 기관의 이름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 앞서 살펴본 조건들이 충족된다면, 신설되는 노동법원은 노동자 권리 보호를 위한 중요한 기관이 될 것이다. 그 반대로, 충족되지 못한다면, 신설되는 노동법원은 기존 법원 조직의 확대에 불과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노동자들의 기존 권리조차 침해하는 나쁜 기관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현재 노동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법원 조직·노동사건에 대한 민사소송, 행정소송, 형사소송 등의 재판 및 판결 절차·노동사건을 담당하는 판사 등의 특수성, 문제점, 한계 등을 면밀히 검토·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신설되는 노동법원이 노동자 권리 보호를 위한 기관으로 제대로 만들어지기 위한 법제도적 조건들을 꼼꼼히 따져보고,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논의해야 한다.


*출처: <e노동사회> 2024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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