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판례 쟁점] 삼성의 노조파괴 사건과 손해배상 책임-(최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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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법/판례 쟁점] 삼성의 노조파괴 사건과 손해배상 책임-(최혜인)

윤효원 1,137 03.07 16:38


 

삼성의 노조파괴 사건과 손해배상 책임 


최혜인(금속노조 법률원)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습니다(민법 제750조). 법을 위반하여 형사 처벌 받는 것과 별개로, 그로 인해 피해를 받은 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노란봉투법’도 손해배상 책임에 대한 것입니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쟁의행위, 그밖에 노동조합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쟁의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에 대하여 노동조합 또는 노동자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노동조합법에는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민사 면책(노동조합법 제3조)과 형사 면책(노동조합법 제4조) 규정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손해배상·가압류는 대표적인 노동조합 파괴 수단입니다. 


그동안 법원은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에게 11.6억 원을, 금속노조 갑을오토텍 지회장에게 102.6억 원을, 금속노조 기아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에게 5.8억 원을 사용자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러자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을 탈퇴하기 시작했고 자연히 노동조합 활동은 위축됐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을 배상해야 하는 노동자들의 통장은 압류됐고, 집에는 ‘빨간딱지’가 붙었습니다. 항소심을 거쳐 손해배상액이 감액되어도 여전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습니다. 복직을 해도 가압류된 통장으로는 일상으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이렇게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수단으로 손해배상·가압류가 악용되지 않도록 ‘노란봉투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고, 드디어 2023년 11월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그렇지만 ‘노란봉투법’은 단 한 명의 노동자도 구하지 못하고, 2023년 12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결국 폐기됐습니다. 


삼성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을 소개하기에 앞서 ‘노란봉투법’을 먼저 언급한 것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이라는 공통점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 결과는 참 많이 다릅니다. 노동자는 손해배상 책임에 짓눌리지만, 기업은 면죄부를 얻는다는 걸 이번 판결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삼성에서 있었던 노조파괴 사건과 이번 판결의 내용, 그 의미와 한계를 이야기하겠습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방침에 의한 조직적 노조파괴 


삼성은 오랜 기간 ‘무노조 경영’을 경영 방침으로 하는 반(反)헌법적인 조직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은 경영에 지장을 초래하는 방해물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은 매년 ‘그룹 노사 전략’을 수립했습니다. 이를 각 계열사에 배포하여 이행하도록 했고 지속적으로 평가하며 무노조 경영을 독려하곤 했습니다. 


‘그룹 노사 전략’은 살벌할 만큼 구체적입니다. △노동조합과 관련한 상황을 신속하게 공유할 것, △노동조합이 설립될 움직임이 보이면 일사분란하게 대응할 것, △복수노조의 대응 태세를 점검할 것, △그룹 전체에 노동조합 대응 전략을 전파할 것, △무노조 경영 철학을 견지할 수 있도록 임직원 정신교육을 강화할 것, △노조원 개별 탈퇴를 유도해 노동조합을 조기에 와해할 것, △노동조합 설립을 예방하거나 와해하기 위해 노무사 등의 인력을 충원할 것, △이른바 ‘문제인력’의 동향을 파악하고 감축할 것, △노동조합 대응을 위해 비상상황실을 설치하고 운영할 것, △단체교섭 지연을 통해 노동조합을 고사시킬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삼성은 ‘무노조 경영’ 방침을 관철하기 위해 위와 같은 전략에 따라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전반에 체계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2019년 12월 법원은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와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조직적 부당노동행위가 있었음을 확인하고 여기에 가담한 삼성전자 임직원, 삼성전자서비스와 그 임직원, 삼성물산 임직원, 경총 임직원, 협력업체 대표, 어용노조 간부, 경찰 등에게 노동조합법 위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형법 위반(업무상 횡령, 뇌물 공여 및 취득 등), 파견법 위반, 공인노무사법 위반 등으로 유죄 판결을 했습니다(각 범죄 사실은 행위자별 상이함). 법원에서 인정된 삼성의 부당노동행위 등은 삼성에버랜드에 대한 것과 삼성전자서비스에 대한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삼성에버랜드의 부당노동행위 


2011년 6월 사무실에서 노동조합 설립 계획이 담긴 문건을 발견한 삼성에버랜드는 ‘그룹 노사 전략’에 따라 상황실을 설치했습니다. 노동조합 설립을 주도했던 노동자를 샅샅이 감시한 후, 꼬투리를 잡아 경찰에 고소하면서 이를 이유로 해고했습니다. 노동조합 설립에 관여한 노동자는 징계했습니다. 해고되고 징계된 노동자들은 노동위원회 구제신청과 행정소송 등으로 시간을 소모했고, 정상적인 노조 활동은 어려웠습니다. 삼성에버랜드는 이처럼 노동조합 활동을 방해하면서,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징계를 받는다는 본보기를 만들어 조합원을 확보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심지어 삼성에버랜드는 2011년 7월 1일부터 복수노조가 허용될 것을 이용해 노동조합 설립이 예상될 경우 회사 차원에서 대항노조를 설립해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획득하고 교섭권을 독점할 전략을 수립합니다. 이에 따라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지회(전 삼성일반노조)가 설립될 것에 대비하여, 2011년 6월 20일 대항노조를 설립해 10일 만에 단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단체협약 체결일 바로 다음 날인 2011월 7월 1일은 복수노조가 허용되기 시작한 날로, 당시 삼성에버랜드가 얼마나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노동조합이 설립되더라도 향후 2년간 단체교섭권을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삼성에버랜드는 대항노조 운영에 개입해 조합원을 확보하도록 했으며, 삼성지회 조합원과 접촉해 노조 탈퇴를 회유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삼성에버랜드는 노조원을 부당하게 징계해 노동조합 업무를 방해했고, 대항노조 설립·운영 및 노조 탈퇴 종용으로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를 했습니다.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법원은 삼성그룹 임직원, 협력업체 대표, 대항노조 전현직 위원장 등에게 유죄 판결을 했고(서울중앙지방법원 2019.12.13. 선고 2019고합25 판결), 2022년 3월 17일 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부당노동행위 

 

삼성전자서비스는 삼성전자 제품을 설치·수리하는 기업으로, 지역에 위치한 서비스센터와는 협력업체 관계에 있습니다. 2013년 7월 14일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설립했는데, 삼성전자서비스는 그 전부터 노동조합 설립 움직임을 보고받고 2013년 6월 종합상황실을 설치했습니다. 


가장 먼저 삼성전자서비스는 노동조합 설립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협력업체를 폐업하는 ‘폐업 시나리오’를 수립했습니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 설립 주체가 근무하던 협력업체는 2013년 5월 28일 폐업을 공고하고 직원들에게 2013년 6월 30일 해고를 통지했습니다. 


한편 노동조합은 2013년 7월 14일 386명의 조합원이 모인 자리에서 창립총회를 했습니다. 그러자 삼성전자서비스는 여름 성수기가 되기 전까지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며 폐업을 하겠다는 소문을 유포했습니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이 곧 실직이라는 불안감을 심어주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삼성전자서비스의 지시를 받은 일부 협력업체는 경영난 또는 건강상 이유로 폐업하는 것처럼 외형을 갖추고 폐업해 노조원들을 장기간 실직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서비스는 협력업체 임직원에게 노조원을 다양한 방법(징계, 실적 압박, 특근 미배치, 개별 면담 등)으로 압박하라고 지시하면서 경제적 지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협력업체 대표들은 이러한 지시를 충실히 따랐습니다. 


치밀하게도 삼성전자서비스는 노동조합의 교섭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경총에 교섭권을 위임하면서 단체교섭 지연 방안을 논의했고, 협력업체로 하여금 단체교섭 요구사실 공고를 하지 않는 식으로 단체교섭을 지연하도록 했습니다. 교섭이 진척되지 않고 삼성의 탄압이 계속되자, 최종범, 염호석 2명의 열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종합상황실 지휘 아래, 삼성전자서비스는 다양한 방법으로 노조 탈퇴를 회유하고 신분상, 임금상 불이익으로 조합원을 압박하는 등 조합원에 대한 불이익 취급 및 노동조합에 대한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를 했습니다. 또한 경총 교섭 담당자와 공모해 단체교섭을 지연하게 하는 등 단체교섭 해태의 부당노동행위를 했습니다. 이에 법원은 삼성전자서비스, 그 임직원, 경총 교섭 담당자, 협력업체 임직원 등에게 유죄 판결을 했고(서울중앙지법 2019.12.17. 선고 2019고합557 판결), 2022년 2월 4일 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 

 

삼성의 부당노동행위 등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2020년 4월 13일 금속노조는 위와 같은 1심 판결에 근거하여 가담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했습니다. 애초에 100여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지만,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피고들은 제외하고 무형적 손해로 한정하여, 최종적으로 삼성전자와 임직원, 삼성전자서비스와 임직원, 삼성물산과 임직원, 경총 담당자, 경찰, 에버랜드 협력업체 대표 등을 상대로 약 6억 원의 배상을 청구했습니다.


법원은 형사판결에 기초해 피고들의 부당노동행위 등 불법행위를 인정하면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조합 파괴 등에 대하여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와 임직원, 경총에 1억  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삼성지회 파괴 등에 대해서도 삼성전자와 삼성물산과 임직원에 3천만 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삼성지회 건에 대한 손해배상액이 감액된 것은 삼성지회가 부당노동행위를 당하던 당시엔 금속노조 소속이 아닌 삼성일반노조였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지회 파괴에 가담한 에버랜드 협력업체와 대표에게는 3백만 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반면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염호석 열사 노조장(勞組葬)을 방해한 경찰에 대해서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로 형사 처벌(뇌물죄, 부정처사 후 수뢰죄, 뇌물공여죄 등)을 받은 사실은 있으나, 이러한 범죄로 인해 정신적 손해를 입었다는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인정됐습니다. 

 

노조 투쟁이 마감시킨 ‘삼성의 무노조 경영’ 


금속노조 삼성지회와 삼성전자서비스지회에 대한 삼성의 조직적인 부당노동행위 등 형사판결이 확정됐고, 그로 인해 노동조합이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까지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긴 싸움 끝에 2014년 6월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2019년 1월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습니다. 삼성지회는 노동조합을 만든 지 11년만인 2022년 4월 단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2022년 5월 무노조 경영 방침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현재 삼성그룹 내 설립된 노동조합은 13개로, 무노조 경영은 그야말로 끝이 났습니다. 엄청난 변화입니다. 


그러나 삼성에서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설립됐던 만큼 삼성의 대응은 치밀하고 체계적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을 만들던 노동자는 표적 감사로 해고됐고, 차별적 업무 부여로 임금이 삭감됐고, 심지어 폐업으로 실직 상태가 됐으며, 동료들로부터 따돌림과 협박을 받으며 상처 입었습니다. 그러다 2명이 죽고, 남은 자들은 차가운 겨울날 길에서 ‘열사 투쟁’을 했으며, 노조장을 치르지 못하게 하려는 삼성과 경찰의 폭력에 다치고 연행됐습니다. 

 

법원 판결, 노조에겐 천문학적 배상 요구, 삼성에겐 감액 배상 요구


그럼에도 법원은 금속노조가 청구한 금액의 일부만 인정했습니다. 노동조합 투쟁에는 비현실적 액수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버리던 것과 대조적입니다. 물론 노란봉투법은 적극적 손해까지 포함한 손해배상과 관련된 것이고, 이번 판결은 무형적 손해에 한정한 것이라 직접적인 비교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긴 시간동안 징계 받고, 해고되고, 두 명을 죽게 한 그동안의 고통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노동조합에게는 천문학적 금액을 아무렇지 않게 인정하면서, 기업에게는 청구액조차 감액하는 판결을 하는 법원, 심지어 삼성 노조파괴에 가담한 자들을 특별사면 하는 대통령, 이런 것들이 노동조합을 탄압해도 된다는 시그널이 될까 우려됩니다. 


그렇지만 삼성에는 노동조합이 남았습니다. 노동조합은 아픔을 겪었지만, 매 순간 동료와 함께였고, 결국에는 쟁취하고 승리한 경험이 됐습니다. 이번 판결은 조직적인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삼성이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진다는 것이지만, 새롭지 않습니다. 삼성이 잘못됐다는 것은 ‘무노조 경영’을 부끄러움도 없이 경영 방침으로 삼았을 때부터 알고 있던 것입니다. 이제는 노동조합으로 뭉쳐 단단히 대응하고 더 나은 노동조건을 요구하고 삼성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사용자가 되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출처: <e노동사회> 2024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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