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5일제’ 아닌 ‘주 48시간제’ - 불안정 노동을 위한 진짜 해법
윤효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지난해 주 평균 근로시간은 임금노동자가 36.6시간, 비임금노동자가 37.7시간, 취업자가 41.3시간이다. ‘주 40시간-주 5일제’ 원칙을 적용할 경우, 임금노동자만 따지면 ‘주 36시간-주 4.5일제’에 근접한 셈이다. 이는 ‘평균의 함정’ 때문이다. 전체 노동자의 20%에 달하는 주 35시간 미만 노동자가 평균치를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전체 노동자 2천214만명 가운데 주 52시간 초과가 92만명(4.1%), 49~52시간 115만명(5.2%), 15~35시간 316만명(14.3%), 15시간 미만 130만명(5.9%)으로, 장시간 또는 단시간 근로에 노출된 불안정 노동자가 약 30%에 이른다(김유선 2025.7: <2024년 8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분석자료).
당연하게도 근로시간 불안정층은 기업 규모가 작고,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하고, 고령자나 청년일 경우가 많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상황에서 이들이 안정된 근로시간을 제공하는 노동시장 상층에 진입할 가능성은 작다. 특히 노동시장 중상층의 안정된 노동자들도 구조적 변화와 노령화에 따라 장시간 또는 단시간 불안정 노동자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2023년 한국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보고한 연간 근로시간은 취업자 1천872시간, 노동자 1천874시간으로 OECD 평균(취업자 1천742시간, 노동자 1천717시간)보다 각각 130시간, 157시간 길다. 하루 8시간 근로를 기준으로 할 경우, OECD 평균에 비해 우리나라 노동자는 16일에서 20일, 즉 한 달 정도를 더 일하는 셈이다. 주 50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자 비율도 17.7%로 OECD 평균(12.9%)보다 높다(김유선 2025.5: <한국의 노동시간 실태와 단축 방안: 2030년 OECD 평균 달성을 위하여>).
이러한 사정을 고려할 때, 근로시간 단축 요구는 주 4.5일제나 주 4일제 같은 ‘일수 중심 접근’이 아니라 ‘하루·주·월·연 단위의 총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한 실질적 시간 단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무엇보다도 근로시간 단축 요구는 그 혜택을 받는 집단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근로시간 법제도 개선의 수혜자가 노동시장에서 안정적인 지위를 차지하는 계층인지, 아니면 불안정한 지위를 차지하는 계층인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법제도 개선, 즉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근로시간 단축을 추진할 경우 그 방향이 노동시장 상층부터 적용하는 방식인지, 아니면 하층 노동자에게 먼저 ‘주 40시간-주 5일제’를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인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운동의 원칙에서 볼 때, 당연히 ‘주 40시간-주 5일제’의 보편적 적용이 돼야 할 것이고, 이럴 때만이 ‘주 4.5일제-주 36시간’ 캠페인도 노동계급 전체의 지지 속에 활력을 얻게 될 것이다.
근로시간 단축 캠페인은 다음 네 가지 원칙에 기반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총근로시간의 실질적 단축 △불안정 노동자를 포함한 보편적 적용 △노동강도 완화 △임금 삭감 없는 단축이다.
2003년부터 시행 중인 ‘EU 근로시간 지침’에 비춰볼 때, 총근로시간 단축은 주 최장 근로시간을 현행 52시간에서 48시간으로 줄이는 것이다. 보편적 적용은 ‘하후상박’, 즉 취약 노동계층의 근로시간을 더 적극적으로 줄이는 방향이어야 한다. 노동강도 완화는 일 11시간-주 35시간의 연속 휴식을 보장하고, 야간근로를 규제하며, 최소 4주의 연차유급휴가를 제도화하는 것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임금을 유지할지 아니면 삭감할지 여부는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이며, 원칙의 당위성에도 노동과 자본의 역학관계 속에서 결정될 것이다. 우선 근로시간을 단축한 뒤, 그에 따른 임금 보전을 협상하는 ‘선 단축-후 인상’ 원칙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는 근로시간 단축의 효과를 확인한 뒤 임금인상 여력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노동생산성 향상과 함께 기업·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할 수 있다. 이에 대비해 산업정책과 사회정책을 연계하고, 이를 위한 사회적 대화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출처: 『e노동사회』 2025년 7월호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 7월 14일자에 소개된 글입니다)